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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엘든링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 엘든링 밤의 통치자[/h1] 프롬소프트웨어를 정의하는 게임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고독과 인내 끝에 찾아오는 성취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데몬즈소울부터 시작된 그 철학은 다크소울 시리즈를 거치고 블러드본과 세키로로 진화했으며 엘든링에 이르러 마침내 완전히 개화했습니다. 그 장구한 여정에서 멀티플레이는 언제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습니다. 내가 한계에 봉착했을 때 백기를 들고 타인의 손을 빌리거나, 혹은 남의 세계를 침범해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는 방식, 말 그대로 게임의 주류와는 거리를 둔 불완전한 형태의 연결이었습니다. 그랬던 프롬소프트웨어가 처음으로 멀티플레이를 게임 설계의 가장 핵심적인 기둥으로 세운 게임이 바로 엘든링 밤의 통치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롬이 야심 찬 실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절반만 성공했습니다. (스포일러 없는 리뷰입니다.) [h3]엘든링의 옷을 입은 전혀 다른 게임[/h3] 엘든링 밤의 통치자는 엘든링이라는 IP의 껍데기 위에 로그라이크와 배틀로얄 메커니즘을 이식한 스핀오프입니다. 3인 파티를 구성해 림벨드라는 필드에 진입하고, 세 번의 주야 사이클을 버티며 강해진 다음, 마지막에 등장하는 밤의 통치자를 쓰러뜨리는 것이 게임의 전부입니다. 한 번의 런은 30분에서 45분 사이에 완결됩니다. 쓰고 나니 굉장히 단순합니다. 실제로도 단순합니다. 엘든링이 만들어낸 방대한 세계와 수직적으로 쌓인 레벨 디자인, 그리고 서사의 깊이를 기대하고 진입한다면 상당히 당혹스러울 겁니다. 본 작에 그런 것은 없습니다. 있는 건 전투뿐입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 그리고 그 전투를 위한 효율적인 준비뿐입니다. 이 점을 먼저 명확히 짚어야 하는 이유는 본 작이 가진 단점과 장점 모두 이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h3]전투만큼은 역시 프롬이 한다, 하지만[/h3] 밤의 통치자에서 전투는 여전히 훌륭합니다. 정확히는 엘든링의 전투 시스템이 여전히 훌륭하다고 해야 맞겠지만, 그 전투가 3인 협동이라는 혼돈의 환경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8종의 나이트파러 캐릭터가 각자 뚜렷한 전투 스타일과 패시브를 보유하고 있어 파티 구성에 따른 시너지와 전술적 선택의 폭이 생각보다 다채롭습니다. 밤의 통치자 보스전은 연출과 비주얼만큼은 지금까지 프롬소프트웨어가 만들어온 보스전 중에서도 단연 최상급입니다. 3인이 동시에 맞서 싸우는 상황을 전제로 설계되었기에 그 규모와 시각적 임팩트는 오리지널 엘든링의 어떤 보스와 비교해도 압도적입니다. 밤의 통치자 테마곡들 역시 코타 호시노의 작업답게 보스전의 연출과 정확히 맞물려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립니다. 그러나 연출이 화려할수록 실제 전투 설계의 아쉬움이 더 도드라집니다. 3인 기준으로 밸런싱된 보스는 필연적으로 광역 패턴 위주로 설계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패턴의 다양성이 구조적으로 제약받습니다. 오리지널 엘든링의 보스전에서 느낄 수 있었던, 플레이어 개인을 겨냥한 정교한 패턴과 그에 대응하고 읽어나가는 치밀한 공방의 밀도가 상당 부분 희석됩니다. 패턴의 템포도 비교적 일관적이고, 어그로 관리 시스템을 이해하면 보스의 행동을 어느 정도 강제할 수 있어 공략의 깊이도 단조로워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인 전제 설계의 한계상 특정 개인에게 집중되는 기믹형 패턴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점은, 소울라이크 보스전 특유의 긴장감과 몰입의 핵심을 정확히 건드리는 문제입니다. 스케일에 비해 전투의 전체 흐름이 단순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것이 단순히 장르 타협이 아니라 설계상의 한계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h3]로그라이크라는 선택, 그리고 그 대가[/h3] 엘든링을 처음 플레이할 때 칼리드 성 어딘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무기가 나의 빌드를 통째로 바꿔버린 경험을 기억합니다. 누군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지형을 뒤지다 건져낸 그 발견이 엘든링을 엘든링으로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와의 유기적인 상호작용, 발견의 쾌감, 그리고 그 발견이 내 성장으로 이어지는 서사적 연결감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밤의 통치자에서는 그 경험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30~45분 이내에 런이 종료되는 세션제 게임이기에 획득한 장비와 무기는 런이 끝나면 소멸합니다. 영구적으로 이월되는 성장 요소는 나이트파러별 특수 패시브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오리지널 엘든링이 수백 시간에 걸쳐 빌드를 연구하고 파밍을 통해 캐릭터를 완성해가는 깊이를 제공했다면, 밤의 통치자는 그 과정을 45분 안으로 압축한 대신 반복 플레이를 통한 숙련도 축적을 택했습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재미의 방향이 다른 게임입니다. 문제는 로그라이크를 선택한 이상 반복 플레이의 당위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 핵심이 되는 맵 설계에서 본 작이 가장 큰 아쉬움을 드러냅니다. 림벨드는 림그레이브와 리에르니아의 에셋을 기반으로 구성된 반정적 맵으로, 개별 런마다 거점의 위치가 소폭 달라지긴 하지만 전체적인 지형과 시각적 인상은 사실상 동일합니다. 지변이라는 이름의 특수 구역을 통해 눈 지형, 부패 지형 등 일부 변화를 줄 수는 있으나 그 종류가 고작 다섯 가지에 불과해 십 수 번의 런을 소화하고 나면 기시감을 억누르기 힘들어집니다. 하데스처럼 섬세하게 변주된 공간 구성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인왕 2처럼 매 던전마다 완전히 다른 맵을 제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같은 무대에서 조금 다른 변수들을 만나는 것에 가깝습니다. 30시간 이상 플레이타임이 쌓이기 시작하면 이 반복감은 더 이상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 됩니다. [h3]탐험의 즐거움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h3] 개인적으로 엘든링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보스전이 아닙니다. 레벨드 크리스탈 동굴의 위치를 혼자 찾아내던 순간, 지도에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은 채 절벽 너머로 뛰어내려 숨겨진 성소를 발견하던 그 순간들입니다. 지형 자체가 일종의 수수께끼였고, 세계가 플레이어에게 묻지도 않고 비밀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 세계를 스스로의 발로 탐사하며 발견해나가는 경험이 엘든링을 게임사에 남을 작품으로 만든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밤의 통치자에서는 그 경험이 근본적으로 봉쇄됩니다. 배틀로얄의 자기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밤의 비가 맵을 지속적으로 좁혀들어오기 때문에, 탐험이 아니라 효율적인 동선 계획이 강제됩니다. 내가 어디를 가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이머가 결정합니다. 이 구조가 긴장감을 부여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결과적으로 오픈필드라는 형식을 채택하고서도 탐험의 내재적 동기를 봉쇄해버린 셈입니다. 프롬이 수년에 걸쳐 구축한 탐험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이 본 작에서는 시스템에 의해 제한당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 그것이 이 게임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웠던 부분이었습니다. [h3]서사의 시도는 좋았으나, 정작 서사가 빈약하다[/h3] 본 작이 시도한 서사 방식의 변화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개성 있는 비주얼과 뚜렷한 캐릭터성을 가진 8명의 나이트파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축하려 한 시도, 그리고 이들 각각에게 고유한 배경과 동기를 부여하려 한 방향성은 프롬의 기존 방식과 구분되는 새로운 시도로서 충분히 흥미로웠습니다. 문제는 그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오리지널 엘든링의 서사는 환경 자체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지형과 오브젝트, 아이템 설명, 숨겨진 공간 안에 파편적으로 배치된 정보를 탐험을 통해 스스로 발굴하고 조합하는 체험형 서사가 프롬 게임이 구축한 가장 독창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본 작에서는 탐험의 동기 자체가 밤의 비로 인해 봉쇄된 탓에 환경적 스토리텔링의 여지가 근본적으로 좁아집니다. 그 빈자리를 캐릭터 중심의 퀘스트가 채우는데, 정작 이 퀘스트의 서사적 완성도가 고르지 못합니다. 인상적인 순간이 분명히 있는가 하면, 캐릭터 간의 관계나 전체 스토리의 흐름이 느닷없이 얕아지거나 맺음이 어색한 구간도 적지 않아 서사 경험의 질이 일관되게 유지되지 않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본편과의 연계성입니다. 밤의 통치자는 엘든링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그 서사적 연결이 지나치게 느슨합니다. 본편을 깊이 즐긴 유저라면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의 맥락을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되는데, 서사적 연계는 거의 없으면서 정작 등장하는 컨텐츠는 재탕입니다. 서사의 연속성은 포기하고 게임의 소재는 그대로 가져온 이 어정쩡한 포지셔닝이 궁극적으로 본 작의 서사가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핵심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h3]심부가 드러낸 기획의 허술함[/h3] 심부는 본 작의 엔드 컨텐츠에 해당하는 고난이도 구간입니다. 그리고 이 심부가 프롬 팬들에게 가장 큰 비판을 받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심부의 난이도 설계는 단적으로 말하면 적의 스펙을 일방적으로 끌어올리고 색깔만 바꾸는 방식에 크게 의존합니다. 새로운 패턴이나 기믹, 전투 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단순한 수치 인플레이션으로 난이도를 올리는 것은 게임 설계에 있어서 가장 손쉬운 동시에 가장 허술한 선택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프롬 코어 유저층의 특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입니다. 소울 시리즈를 즐겨온 유저들은 기본적으로 도전적인 난관 앞에서 패턴을 분석하고 공략을 완성하며 성취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찾는 타입입니다.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이 성취형 유저들에게 달성 가능성이 불명확한 허들을 주고, 이걸 달성할 때까지 컨텐츠 고갈은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프롬이 지금까지 쌓아온 설계 철학과 완전히 어긋납니다. 프롬의 난이도가 언제나 지지받아 온 이유는 그것이 합리적이고 극복 가능한 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비합리적인 수치 벽을 세워두고 그것을 콘텐츠 수명으로 활용하는 것은 프롬답지 않게 허술한 기획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h3]솔로 플레이는 사실상 별개의 게임[/h3] 솔로 플레이는 권장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비추입니다. 게임 자체가 3인 파티를 기준으로 밸런싱되었기 때문에, 혼자 진입 시 보스의 내구도는 줄어들지만 그 외 스케일링은 거의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망 시 빈사 상태 없이 즉시 런 실패로 이어지는 1인 전용 시스템도 협동 플레이와 비교했을 때 현저한 경험의 격차를 만들어냅니다. 결정적으로 이 게임의 재미를 구성하는 상당 부분이 파티원과의 유기적인 협력과 상황 공유에서 나오기 때문에, 1인 플레이는 재미의 축이 그대로 증발한 채 난이도만 남은 경험에 가깝습니다. 매칭이 원활하지 않은 환경이거나 함께 할 친구가 없는 상황이라면 솔직히 구매를 재고할 것을 권합니다. [h3]그래도 이 가격에 이 보스전 연출은 인정[/h3] 단점을 많이 지적했지만 40달러라는 가격 앞에서 상당 부분 상쇄됩니다. 이 가격에 프롬소프트웨어의 전투 시스템과 밤의 통치자 보스전의 연출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강점입니다. 다만 최적화 문제는 이 가격대에서도 가볍게 넘기기 어렵습니다. 효과가 대량으로 몰리는 3인 보스전 상황에서 프레임 하락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특정 그래픽카드 세대에서는 끊김 현상이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멀티플레이 게임의 특성상 프레임 불안정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전투 경험 전반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조속한 패치가 반드시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h3]총평 : IP 없이도 이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h3] 어딘가에서 읽은 감상이 있습니다. "엘든링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그저 그런 게임이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도 이 질문 앞에서 솔직하게 '그랬을 것이다'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본 작은 프롬소프트웨어가 자신들의 전투 시스템과 보스 연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시도한 실험작입니다. 그리고 그 실험에서 연출과 비주얼은 명백히 성공했고, 보스 패턴 설계의 구조적 한계, 맵 반복성, 탐험 동기의 부재, 빈약한 서사 경험, 그리고 심부로 대표되는 엔드 컨텐츠의 기획 허술함에서는 아쉬움을 숨기기 어렵습니다. 엘든링을 천 시간 이상 즐긴 코어 유저라면 오히려 실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엘든링이 만들어낸 방대하고 깊은 경험의 연장선을 기대하고 진입하면 반드시 배신당한 느낌을 받습니다. 반대로 프롬의 전투를 짧고 굵게 즐기길 원하거나 함께 할 친구 두 명이 확실히 있는 분들에게는 이 가격대에서 꽤 자극적인 멀티플레이 경험을 줄 수 있는 선택지임은 분명합니다. 프롬이 이 방향성을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가 오히려 더 기대됩니다. 본 작이 실험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었다면, 그리고 후속 콘텐츠 혹은 차기작에서 맵의 다양성과 보스 패턴 설계의 깊이, 그리고 서사와 탐험의 유기적 연결이라는 세 문제를 해결한다면 진짜 프롬의 야심이 어디까지 뻗을 수 있는지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은 절반의 성공이 절반의 아쉬움보다 간신히 무거운 게임입니다. 개인적인 메타 점수는 78점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친구 둘과 함께한다면 추천, 혼자서 엘든링의 후속 경험을 기대한다면 비추천.
소울류 같이 할 (+닼소본키로링 대부분 한) 친구 3명 이상 있어서 행복함. 공방도 나름 재밌긴 함.. 내 속이 터지거나 남의 속을 터뜨리거나 둘 중 하나는 항상 있지만...